물받이

in blurt •  2 years ago 

물받이/cjsdns

큰비가 내리니 비가 새어 실내로 들어온다.
벽면이니 창호 사이로 물이 들어오나 싶어 열심히 찾아봐도 샐 곳이 없다.
해서, 설마 하며 지붕에 올라가 보니 새는 이유가 있다.

물받이 설치가 잘못되었고 비가 많이 오면 역류해서 벽면을 타고 들게 생겼다.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물은 없는 길도 만들어 간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게 내버려 두면 화도 안 내고 잘 내려간다.
그런데 막아 서거나 가둬 두거나 하면 그 착한 놈이 성질을 내기 시작하고 자기들끼리 힘을 모아 별짓을 다한다.
별짓에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엄청 큰 말썽을 부리기도 한다.

틈으로 새어 들어 적시는 정도가 아니라 이놈들은 화가 나면 자기들끼리 힘을 모아 무서울 게 없다는 듯 세상을 다 자기 아래 두려 한다. 아래로만 아래로만 납시는 귀하신 몸이 화가 나면 모든 걸 자가 아래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늘 높이 올라가며 시커먼 속내를 들어 내놓고 겁박을 해온다.

불보다 무서운 게 물이라 했다.
물 앞에서는 늘 겸손해야 한다.
물 알기를 물 같이 알다가는 물 되는 수가 있다.

비가 새는 건물도 그렇다.
내리는 비, 빗물 잘 모시겠다며 편히 가시지요 하고 달아놓은 물받이가 오히려 가는 길을 막아서니 그래 그렇다면 어디 골탕 좀 먹어 봐라 하고 틈을 비집고 들어와 천정에 나타 나서 나 여기 왔는데 오고 싶어 온 것이 아니니 오해 마 하면서 뚝뚝 떨어진다.

그렇다고 그 빗속에 지붕으로 올라갈 수는 없고 오늘은 비가 안 오길래 올라가 살펴보니 샐 이유가 없어 보여 그럼 뭐가 문제지 하며 물받이 홈통을 떼어 내니 사단은 그곳에 있었다.
물받이 홈통에서 미처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는 물이 역류를 해서 작은 틈을 통해 스며든 듯하다.

비가 또 내리기 시작한다.
빨리 나가 대강이라도 마무리 작업을 해야겠다.
건물주 노릇도 그냥 되는 거 아니다.
어서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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