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게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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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게 사과/cjsdns

살다 살다 발에게 사과를 하다니
어제는 내발 특히 오른발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나는 네가 발을 이렇게 혹사시켰는지 아니 옥죄어 왔는지 몰랐다. 그냥 당연한 갓으로 받아 드리며 살았다.
그런데 어제 느꼈다.
당연한 게 아니라 그동안 미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이야기를 하려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이야 큰 신발이 널려있으니 문제가 별로 없으니 50년 전만 해도 275미리 이상 신발 구하는 건 하늘네 별따기였다.
오죽하면 청계천 나가서 미군들 신발 파는데 가서 사서 신기를 자주 했다.

내가 군생활 하던 시절 만해도 275미리가 넘는 신발이 공급이 안되었다.
그러니 제일 큰 신발로 배급을 받는 게 275미리다
신데렐라 놀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신발에 발을 맞춰 신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 발의 사이즈가 275로 각인이 되어있다.
그래서 불편을 좀 느껴도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그런데 작년부터 운동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헬스장에 다니다 갑갑해서 밖에서 걷는 것으로 바꿨다.

그런데 발이 계속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라 한 치수 올려서 280미리를 신기 시작했다. 조금 나아지기는 했으나 오른발은 여전히 불편하다.

그래서 발에 관심을 가져보고 신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운동화도 볼이 넓은 게 있다는 것 도 알게 되고 찾아보니 마땅치 않다.

인터넷을 뒤져서 주문을 해도 역시 나이다.
그래서 신발가게 가서 신어보고 산다며 몇 군데 들려도 마땅치 않다.

그러다 어제 먼 동네 있는 홈플러스에 들려 입점해 있는 월드컵 운동화 가게에 갔다.
볼 넓은 신발을 찾으니 트래킹 화가 볼이 좀 넓다며 신발 치수를 물어 280미리요 하니 진열해 놓은 건 없고 창고에서 찾아오겠다며 말하고는 한참만에 네 켤레를 내놓으며 신어 보란다.

그런데 신어보니 영 아니다.
여전히 불편히다.
그런데 신발가게 주임이 한마디 한다.
그러면 한 치수 올려 신어 보세요 한다.
볼을 넓게 만들어도 치수에 맞춰서 만드니
그리 하면 아무래도 편할 겁니다 한다.

그래서 볼이 좀 넓어 보이는 285미리로 신어보니 발이 편하다.
이거구나 그런데 왜 수를 올려 신을 생각을 안 했나 싶다.
계산을 하고 새 신발을 신고 오는데 오른발이 편하다.
그러면서 고맙다는 말을 해온데 미안했다
그동안 학대를 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했다.

사실 발이 크면 신발이 예쁘지 않다.
나는 발이 작은 사람이 부러웠다.
그래서 신발 치수를 올리는데 거부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285미리 신발을 신고 어제 걸어보니 많이 편해졌다.
그래 오늘 아침은 일찍 서둘러 나와 봤다
. 좋다.
이렇게 편한걸 그동안 괜히 생고생했구나 싶다.

지금은 285미리 신발이 신발가게에서 구해지지만 예전에는 없었다. 지금도 300미리 신발은 그런 거 같다.
해서 큰아들은 외국 여행을 가면 신발가게부터 들린다.
아니면 해외 직구를 한다는데 내 젊은 시절에는 없던 이야기다.

이제부터라도 발을 편히 해줘야겠다.
걷는 게 싫어 짜증 내며 물집 만드는 게 아니라 꼭 끼니 난들 어떡하냐는 발에 이야기에 진작 귀를 기울여야 했다.
정말 발에게는 미안했고 앞으로는 좀 넓은 집을 장만해 주어 편히 살게 해 주려 마음먹는다.

발아 그동안 미안했다.
고맙고...

2023/01/17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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