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글세 방으로 끌고 다니던 비키니 옷장이
위아랫니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커다란 옷핀에 찔리며 입을 다물었다
손잡이가 덜렁거리는 오단서랍장을
한 칸씩 딛고 올라가던 늦둥이가
서랍장 위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끝으로
꿈에도 부럽던 전셋방으로 이사하기로 한 날
생일 보다 더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그 빨간 동그라미가
세상의 밑바닥을 구르는 바퀴라는 것을
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열심히 바퀴를 돌릴 뿐
구르고 굴러 도착한 성문앞에서
바퀴는 굴렁쇠만도 못했다
빛나는 카드 한 장이 천국의 열쇠를 대신했다
깡통 전세/ 이삼현
소리가 나지 않는 깡통은 답답하다
기한이 지났어도 빠지지 않는 방 때문이다
길게 남아 있을수록 싱싱할 거라는 세간의 통념에
유통기간부터 확인하는 소비자들
눈에 잘 띄는 앞자리에 진열해 놓았어도 뒷방부터 빠지는
묵시적 선택에 상황은 악화되고
헐값에도 팔리지 않아 뺄 수 없는 안타까운 방
가문의 자랑인 굵은 뼈대와
날렵한 이목구비는 단칼에 버려지고
통조림이라는 이름으로 칩거해 온 날들을 뭐라 설명할까
창문 하나 없어 답답한 방
순살만을 고집해 꽉 채웠던 신선함도
원터치로 소통되지 않으면 찌그러지고 녹슬어
마음부터 변질된다는데
유통기간을 소비기한으로 대폭 늘려준 당국의 말을 믿고
숨통 트일 날만 손꼽아 기다릴 뿐
집주인도 세입자도 속만 끓이는 중이다
어데 하소연할 길 없어 막막해진 발길도
시원한 맛에 걷어차는데
굴러다니는 깡통도 속이 비워져야 소리가 난다